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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설교

[믿음 바로 세우기8] 믿음의 유익(요한일서 5:1~4)

by 조직신학 교리설교 2023. 5. 10.

 

믿음의 유익

요한일 5장 1~4절

 

 

서론

 

믿음바로세우기 시리즈 설교가 다음 주일로 끝납니다.

 

1주 왜 믿는가? 믿음의 동기(목적),

 

2주 누구를 믿는가? 믿음의 대상,

 

3주 무얼 믿는가? 믿음의 내용,

 

4주 무엇으로 믿을까? 믿음의 원동력,

 

5주 어떤 자세로 믿을까-믿음의 기본기,

 

6주 어떤 마음으로 살까, 믿음의 자세(생활),

 

7주 믿음의 정신, 어떤 정신으로 살아갈까? 입니다.

 

오늘은 여덟 번째로 믿음의 유익, 믿음생활은 어떤 유익이 있는가? 오늘은 교리적인 설명보다는 제가 60여년 믿음생활을 하면서 어떤 유익함이 있었는가, 어떤 축복을 받았는가 하는 개인적인 간증설교를 하겠습니다. 혹시 자랑처럼 들리더라도 이해하세요! 그 대신 제가 손자자랑은 하지 않았잖아요?^^ 결국은 다 하나님 자랑이니까!

 

1. 예수 믿어, 행복한 자존감을 갖다~

 

저는 믿음이 없으면 내 인생도 없고 하루도 못삽니다. 그만큼 나는 약하고 생각은 많은 성향입니다. 생각이 많으면 번뇌(?)도 많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이 사는 사람들을 보면 둘 중의 하나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든지 무식하게 용감한 무데뽀입니다.

 

세상은 진화론을 믿는 사람과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로 분류됩니다. 진화론은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영혼이라는 개념자체가 진화의 기본원리에 모순되기 때문입니다. 미생물에서 침팬지-원시인간-고등인간 샤피엔스로의 진화를 주장하기에 영혼이 있는 무지한 인간에서 기술이 향상되는 영혼이 있는 인간으로의 주장은 진화론에서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진화론자들에게 종교는 무엇인가? 그건 사람들이 만들어 낸 허구입니다. 양식의 문제, 두려움의 문제, 죄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은 신을 만들고 종교를 창작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부족이나 종족의 단합을 위해 부족신을 만들고 족장이나 통치자들은 신적 권위와 결속을 위해 종교를 당근과 채찍으로 이용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종교스토리들이 계속 흘러가면서 신화가 축적이 되고 교리와 신학이 그물로 짜여 얼개가 이루어지면 씨족에서 부족으로, 민족으로 제국으로 번영하면서 민족이 죽으면 민족종교도 신도 죽고 민족이 번영하면 민족종교도 번영하고 제국의 신은 점점 광역화되고 기독교나 이슬람, 불교와 같은 세계적인 규모로, 수천 년 동안 흘러온 종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종교의 촘촘한 그물들은 허구만 있고 사람의 손으로 덧칠한 얼개만 있지 진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어차피 영혼이 없는데 신이 왜 필요하냐는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저는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믿음에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어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 긍정 자화상, 행복한 자존감을 갖게 된 것입니다.

미국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반과 창조론을 가르치는 반으로 나

누어 실험을 했습니다. 몇 달 후에 행동 변화를 체크해보니 진화론반은 점점 동물화가 되고 창조론반은 학생들이 품위 있게 변해있더라는 것입니다. 자기근본이 무엇이냐 배운 대로 그 성향에 맡겨 버린 것입니다.

 

생물학 교수가 평생을 진화론만 가르치다 나이 들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지난 생애를 후회하면서 하는 말이, “진화론을 가르치면서도 꺼림칙한 것은 동물원에 가서 원숭이를 대할 때 기분이 이상했다. 어떻게 원숭이가 내 조상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이제 예수를 믿고 나니, 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구나, 내 기원을 아니 마음이 평안하다!” 고 말했습니다.

진화론자는 인간기원을 아메바나 원숭이에게 두고 단군교신자들은 곰에 둡니다. 부씨들은 제주도 땅굴 속에 둡니다. 그러니 과학이 발달할수록 인본주의는 이기심이 나옵니다.

 

성경은, 인간기원을 하나님에게 둡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사람은 자아상(自我像)이 중요합니다. 자아상은 내가 생각하는 나입니다. 나를 사랑스런 존재라 생각하면 사랑받을 행동을 합니다. 진화론적 자아상이면 동물적 근성으로 진화합니다. 내 자아상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품격을 지니게 됩니다.

제게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청소년-청년시기입니다. 부끄럽게도 여기에는 신학생 시절까지 포함됩니다. 자신감 결여, 가장 힘든 부분이었습니다. 내놓을 것이 없어요! 출신이든 실력이든 배경이든 그야말로 흙수저 출신이고, 루저였습니다.

 

그러던 제가 하나님의 섭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없던 우리 마을에 4.3사건, 6.25 이후의 불안정한 제주도 치안을 위해 파견된 김두혁 순경이 우리 집 바로 뒤에 초가집 예배당을 세운 것입니다. 무심히 생각했는데 어느 날 이게 내 마음에 들어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 6.25를 일으켰나? 4.3사건이 일어났나? 하필이면 믿는 순경이 파견되고 하필이면 왜 바로 우리 집 뒤에 예배당을 짓는가? 500호가 되는 마을이었기에 굉장히 넓습니다! 

나 하나 구원하려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움직이셨구나, 이런 생각이 드니 나는 굉장한 사람입니다! 여기서부터 자신감이 생기고 자신감 결여라는 몹쓸 병이 치유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몰랐다면 어림없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런 긍정 자화상을 갖고 살아온 것만큼 해도 예수님 믿고 톡톡히 수지가 맞는 신앙의 이익입니다. 예수님을 몰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내 운명을 극복해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었기에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감사하고 기쁘게 살아왔습니다. 행복한 자존감~ 이것이 바로 믿음이 주는 이익이고 4, 내게는 곧 세상을 이기는 근원입니다!

 

2. 예수 믿어, 잘 되어 좋다~

 

내가 살아왔던 생애를 한 줄로 줄인다면 부족함이 없다!” 자족함입니다. 한마디로 나이스~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매일 끝자락에 하시는 말씀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 마지막 날 당신의 형상대로 지은 사람을 창조하시고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베리베리 굳~ 당신이 만든 세상, 6일의 사역에 만족하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내 생애를 돌아보면, 고학하느라 힘들기도 하고 청소년시절과 청년시절에는 자신감결여를 극복하지 못해 우울하고 40대 초반에 인생이 무너져서 울기도 했는데 그래도 내 생애에 대한 나의 점수는 보기에 좋다! 굳입니다. 늘빛교회와의 만남, 교사의벗과 살아온 세월들, 두 아들의 가정을 볼 때, 베리베리 굳~입니다. 너무 좋아요!

 

그만큼 내 인생의 만족도가 높습니다. 이런 만족도는 행복한 자존감에서만 오는 것만이 아닙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자존감을 가져도 살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거나 받은 복이 없다면 그만큼 만족지수가 낮습니다. 감사는 하지만 넘치는 행복감은 적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내게 분에 넘치게 부어주셨습니다. 내 인생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특히 남자들에게는 든든한 보호자입니다. 19세에 제주-목포행 가야호(?)를 타고 서울역에 내렸는데 지금 생각해도 무슨 용기였는지 모릅니다. 지금은 제주-서울은 가출수준이지만 45여 년 전, 제주바다를 넘는다는 것은 보통 용기가 아닙니다. 새벽 겨울바람을 맞으며 서울역에 내렸을 때의 그 황량함과 두려움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45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어떻게 견디었을까? 육신의 아버지를 부르듯이 그렇게 하나님 아버지 이름을 부르며 객지생활을 견디었습니다. 등록금 때가 돌아오면 가슴이 조입니다. 교회들도 어려워 장학금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휴학을 밥 먹듯 하지만 그때 휴학은 학업중단이자 인생 패배자입니다. 등록마감이 되면 아버지~ 도와주세요~ 한없이 아버지를 불렀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아 하나님아버지~라는 이름을 피했다고 했는데 제게는 나를 도와줄 이는 하늘 아버지밖에 없었기에 힘들면 하나님 아버지~ 도와주세요~ 불렀습니다. 그러면 타이밍의 문제이지 공급해주시고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 이스라엘을 40여년이나 인도하시며 먹이시며 입혀주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가나안으로 인도해 주셨다고 합니다( 19:4). 출애굽 광야 40년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는 출()제주 이후의 나의 히스토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45여년 나를 품고 안고 업고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습니다.

 

마지막주일이 설립 33주년인데 화곡1 359-6번지 3층 건물에 사택까지 들이고 시작했는데 이 예배당을 보세요! 정말 기쁜 것은 여러분입니다. 어디에 내놓아도 아깝지 않는 여러분~ 정말 잔이 넘칩니다. 하나님이 없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겠어요?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아니면 어떻게 이런 일들이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오직! 믿음이 내게 준 유익입니다!

 

믿음이 내게 준 유익이 그뿐입니까? 여러분은 너무 큰 사랑과 물질과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내게는 여러분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발끝의 구두, 양말에서 머리 끝 안경 하나에까지 믿음이 아니면 내가 받을 수가 없고 누릴 수 없는 축복들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얼마나 많은 축복을 누리며 살아왔는지 내 잔이 넘치나이다!

 

세상을 이긴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라!”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님의 크신 은혜이고 하늘 아버지의 전능하신 이름으로 세상에 지지 않고 나 자신을 지키며 성공이라면 성공하게 하시니 오직 믿음이 주는 힘이었습니다. 할렐루야~

 

3. 예수 믿어, 맡기고 사니 좋다~

 

예수 믿어 좋은 축복들은 더 많이 남아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내게 주시려는지 무엇을 더 준비해 두고 계시는지 믿음이 주는 이익과 선물은 늘 기대가 됩니다. 그 중에서도 믿음이 주는 이익은 죽음입니다. 언젠가는 죽음이 내게도 찾아올 것입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불청객입니다. 아무도 반기지 않는데 꾸역꾸역 찾아옵니다.

 

세상에서 가장 흔한 성씨는 고()씨입니다. 장례식에서는 모두 고()라고 하니까. 그 죽음이 내게도 찾아오고 내 이름도 고()강정훈이 된다 생각하면, 두 가지에서 나는 염려합니다.

 

하나는, 두고 가는 사람들에 대한 안쓰러움입니다. 죽음 앞에서 교인들은 은퇴목사의 죽음을 얼마나 슬퍼할까? 부모에게 자식은 결혼해서 아버지가 되어도 영원한 자식입니다. 내가 없어도 잘 살까? 고아라는 마음에 외롭지 않을까, 부모이기에 하지 않아도 될 공연한 염려를 합니다. 그리고 나를 사랑했던 이들과의 헤어짐은 생각만으로도 슬퍼집니다. 어떻게 견딜까?

 

또 하나는, 죽음자체입니다. 죽음은 얼마나 허망한 것입니까? 진화론에 바탕을 두었던 생애였다면 더 덧없고 두렵겠지요! 진화론은 영혼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그냥 동물일 뿐입니다. 그래서 영혼문제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내세나 천국은 없습니다.

 

죽으면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내가 가야할 도착지는 어디일까? 죽음의 출발지는 있는데 도착지가 없다면

 

건강할 때는 그냥 견딥니다. 언젠가는 죽을 것을 알면서도, 죽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희한하게도 나와는 관계없는 것처럼 느껴져 삽니다. 5분 후에 내가 죽는다! 남은 몰라도 자신은 감지할 것입니다. 그때의 내 마음은 남들도 다 가는 길인데 뭐 이런 마음으로 담담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죽음 앞에서는 후회, 어디로 가는지 모른 두려움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진화론에 기본을 둔 인본주의는 영생이나 천국 준비보다는 수명을 얼마나 늘릴까, 그래서 과학을 통해 거의 불멸에 가까운 생애를 만들어 낼까, 인간의 지혜를 총동원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살 수는 있어도 영원히 살 수는 없습니다. 죽음이 다가왔을 때 하나님을 의도적으로 부인한 이들은 더 무섭겠지요! 저들이 한 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는 사람들과 내세를 믿는 사람들의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순간에는 얼굴이 달라요!

 

하나님을 몰랐다면 내게도 죽음은 두려운 순간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냥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죽습니다. 부활을 전제로 하는 죽음이고 영생의 열매를 기약하는 죽음입니다. 그러기에 죽음은 어둠의 터널이 입구이면서 천국을 향한 출구가 되는 것입니다.

 

훗날, 우리교인들이 목사님 숨졌다~ 아들들이 아버지 죽으셨어요! 가슴이 철렁~ 할 때 비록 나는 숨이 끊어졌지만 이렇게 말할 겁니다. ‘아들아, 드디어 도착했다~’ 그것을 생각하면 죽음과 벗하고 살아야 하는 노년의 삶이, 죽음 앞에서의 긴장된 시간이 두려움이 아니라 성화를 돕게 됩니다. 죽음을 안식을 위한 천국길목으로 이해하고 평화로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4,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자 죽음을 이기는 나의 믿음입니다! 내 생애에 죽음이 왔을 때도 소망을 품을 수 있다는 이것만으로도 하나님을 위해 늘빛교회를 위해 조금이라도 희생하고 수고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에 비해 믿음이 주는 이익은 엄청납니다. 결코 손해 보는 믿음생활은 아니었습니다. 엄청나게 수지가 맞는 인생 장사였습니다. 하나님 장사를 해드렸더니 하나님은 그 이익금의 모든 것을 내게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유익입니다.

 

헨리 브란트() <고친 만큼 아름답다>라는 책에서, 죽음을 바다 저 편으로 사라지는 배로 비유합니다. 배가 수평선 멀리 사라지는 것을 보며 누군가가 말합니다.

저기 사라지네요.”

어디로 사라진단 말인가?”

 

진화론자들은 답이 없습니다. 그것은 사라짐이 아니고 소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그냥 사라짐이 아닙니다.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질 뿐 그뿐입니다. 목사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숨을 거두었다! 해안에 서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울먹이는 순간에 수평선 저 너머에 있는 다른 목소리들이 기쁨의 함성을 지릅니다.

 

저기 옵니다! 목사님이 옵니다! 믿음의 형제가 옵니다! 남편이 온다!”

 

그것이 죽는 것입니다. 죽음은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이런 평안을 철학이 주었나요, 명예가 주었나요? 진화론이 주었나요? 뭐가 주었나요? 오직 믿음입니다. 죽음을 이기는 것은 믿음이 주는 유익이자 선물입니다.

 

결론

 

미국의 대통령을 역임한 링컨은, “한 사람을 오래 속일 수 있고 여러 사람을 잠시 속일 수는 있지만, 여러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요! 하나님이 거짓이라면 몇몇 세대를 오래 속일 수는 있고 여러 세대를 일시적으로 속일 수는 있지만 인간역사 이래 모든 사람들의 양심과 본능을 지금까지 속일 수는 없습니다. 진화론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인간이 만들어 낸 허구의 그물이라면 벌써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어떤 공격에도 든든한 반석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구원과 희망과 위로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 믿음으로 약자들이 세상을 이기고 장애인들이 믿음으로 저기 운명을 이기고 죽음 앞에서도 믿음의 힘으로 견디며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사상! 어느 종교! 어느 과학자가 이런 힘과 희망을 줄까요? 오직 예수!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내게는 믿음이 주는 유익입니다! 잘 믿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