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
(召命)
로마서 8장 29~30절
서론
오늘부터 구원론에 관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우리 장로교회는 '구원의 서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선택-부르심-중생-믿음-회개-칭의-양자-성화-견인-안식-영화, 11개의 단계입니다. 이 여름에 성도님 여러분들의 구원이 더욱 돈독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구원론 설교의 목표는, 구원은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힘,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타력종교라고 합니다. 타력(他力)은 바로 하나님의 힘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의 구원을 어떻게 이루어 가실까? 우리가 세사에 태어나기 전에 이미 선택해 놓으십니다. ‘선택’은 신론에서 전했기에 부르심-소명(召命)부터 합니다. 세상에서 나의 구원을 위해서 하시는 첫 번째가 ‘부르심’입니다. 즉, 구원받을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미 프로그램화해 놓았다가 세상에서 때가 되매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결국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장(場)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요6:44)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의 이끄심은 부르심이요, 부르심은 구원의 부르심, 구원으로의 부르심을 뜻합니다. 아무나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프로그램 안에 있는 사람만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1:9)
부르심의 종류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세 종류의 부르심이 있습니다.
첫째가 구원으로의 부르심입니다. 이 부르심을 받아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부르심이 없으면 교회 나왔다가도 되돌아갑니다. 유다 같은 사람입니다.
두번째는, 사명으로의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위한 부르심만 아니라 사명을 위해 부름을 받습니다. 이걸 소명이라 합니다.
세번째는, 하늘에서의 부르심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다가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부르실 때 "네~" 하고 부름에 응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름다운 생애로 남을 수 있습니다.
우선 구원으로의 부르심을 봅시다.
1. 구원으로의 부르심
부르심의 시기
구원받을 사람의 선택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끝납니다. 이렇게 선택된 사람을 세상무대에서 부르시는데 부르심의 시기는 각각 다릅니다.
세례요한은 어머니 태중에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뱃속의 아기 예수를 만나게 되었을 때 속에서 뛰었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어린 시절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성막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 바울까지… 대부분이 청년 시절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너는 이방인을 향한 나의 택한 그릇이라”… 그래서 그들은 제자가 되었습니다.
한 쪽의 강도는 죽음 직전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아슬아슬한 부르심입니다.
저는 4,5세에 부름 받았습니다. 예배당이 집 뒤에 있어 나갔는데 주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오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선택된 사람은 때가 되면 다 주님께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에 낙심하거나 정죄를 해서는 안 됩니다. 언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의문이 들겁니다.
일찍 부름을 받는 일은 손해가 많다? 생각해 보세요! 50년 믿은 사람과 5시간 믿어서 구원을 받는다면 오래 믿은 사람이 손해가 큽니다. 오래 믿느라 주일성수를 하고 헌금을 바치고 봉사를 했는데 구원은 5시간 믿은사람과 꼭 같은 구원이라니, 오래 믿은 사람 입장에서는 좀 억울합니다. 베드로의 구원에 비해 한쪽 강도의 구원은 얼마나 행운입니까. 베드로의 입장에서는 동일한 구원에 섭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정한 분이십니다. 일찍 믿고 오래 믿으면 그만큼 굳센 믿음이 됩니다. 50이 되어 믿으면 머리가 굳어지고 자아가 굳어져서 천지창조, 동정녀 탄생, 십자가 속죄와 부활, 승천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믿고 싶어도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얼마나 답답해요!
어린 시절에 믿으면 저절로 믿어지고 여간하면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믿음을 뼈에 새겼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행복했습니까? 얼마나 주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까? 일찍 믿으니 일찍 믿은 것만큼 기쁨도 큰 것입니다.
늦게 부름을 받고 늦게 믿으면 세상에서 교회 일을 하면서 오래 수고는 아니해서 짧은 신앙생활에 쉽기는 했지만 상급은 없습니다. 자칫 이런 구원을 '부끄러운 구원'이라고 합니다.
오래 믿고 늦게 믿었다는 것이 별 차이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원 일꾼의 비유(마20:1~16)에서, 일찍 포도원으로 나가 부르심을 받아 일한 일꾼과 늦게 부르심을 받아 일한 일꾼의 몫을 같이 합니다. 이 비유는, 일찍 부르심을 받지만 성실하지 않는 일꾼과 늦게 부르심을 받아 감사함과 혹시라도 품삯을 많이 받으려고 죽으라 일한 사람들이 받는 상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일찍 믿은 사람들은 오랜 세월에 감사하고 계속 열심히 믿으시고 늦게 믿으신 분들은 "짧고!" "굵게!" 믿어야 합니다. 열심히 믿어서 늦은 믿음을 만회해야 합니다. 그래야 부끄러운 믿음이 아니라 상을 받는 믿음이 됩니다!
저는 주님께서 일찍 불러주셔서 65년의 삶을 살아왔기에 참 행복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 나름 한 일도 많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일찍 부르심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세요! 늦게 부르심을 받는 분들은 “짧고 굵게!” 더 활짝 열정을 태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부르심의 방법
새에덴교회 소목사님은 예배당에 예쁜 여학생들이 많다는 말에 연애하기 위해 교회에 갔다가 예수님을 믿고 만나게 되었고 지금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이기풍 목사는 서양선교사에게 전도지 받고 일부러 코를 풀었는데 “코 썩는다!”는 말에 밤새도록 코를 만져보며 걱정하다 선교사를 찾아갔습니다. 부르심을 받는 것도 별 희한합니다.
영국 태생으로 ‘설교의 황태자’라는 별명의 스퍼젼 목사님이 예배당 강단에 서서 혼자 설교연습을 하는 데 마침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던 그 장면입니다.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오는 예수를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외치는 장면을 스퍼젼이 큰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예배당 페인트칠을 하던 인부가 그 소리를 듣고 궁금했습니다. 그 뜻이 무엇인가? 물었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흔한 예화이지만, 6.25때 북한군 장교가 미군에게 잡혀 총살당하기 직전, 무조건 “헬로, 오케이, 예수!”… 안다는 영어는 다 했습니다. 통역이 찬송가 불러보라는 말에 아내(장로 딸)가 부르던 찬송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가 생각이 나서 앞 소절 밖에 몰라… 이젠 죽었구나, 눈물을 흘렸더니, 감격해서 우는 줄 알고 살려주었습니다.
영천포로수용소에서 재심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찬송을 불러보라는 데 아들이 부르던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예수께서 오실 때에…” 우니까 “됐다! 잘 믿으시오” 하면서 살게 되었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정말 예수가 믿어지더라! 이것이 바로 부르심입니다.
저는 우리교회 바로 뒤에 예배당이 생기면서 놀러 나간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여수반란사건이 일어나고 제주도 4.3사건이 일어나면서 이를 진압하기 위해 파견되었던 총각 경찰이 우리 집 뒤에 예배당을 세웠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부르시기 위해 4.3사건을 허락하셨다? 이렇게 저는 거창하게 제 구원 프로젝트를 거대하게 해석하지만 4.3사건의 희생자들이 들으면 기분이 나쁠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보세요. 하나님의 부르심의 성질은 다양합니다. 병에 걸려서 부르심을 받은 분들도 있고, 여기서는 안 되니까 외국으로 불러내서 부르심을 받게 하시고, 가정불화로, 인생의 고난 가운데서 부르심을 받게도 하시고… 군대에서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께서 천국의 선택 프로그램에 입력이 되어 있는 분들은 언제,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부르십니다. 그러기에 아직은 부르심을 받지 못하는 남편이나 자녀들에게 전도를 못하면 찬송이라도 하세요.
“주여 당신 은혜로서 부름 듣게 하시고 복종하는 맘을 주사 따라가게 합소서.”
이런 부르심 교리의 중심은? 구원은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불러주신 하나님께 경배를 올려야 합니다.
부르심의 목적
-죄를 용서해 주시려 부르십니다.
죄인 아담에게 찾아오셔서 “어디 있느냐?” 왜 부르셨어요? 죄를 사해 주시려고! 사울에게 찾아오셔서 “사울아 사울아!” 죄를 용서하시려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부르신다는 말씀이 성경에 1,900번 나온다 합니다. 대표적인 구절이 이사야 1:18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해주마!”
왜 부르신다고요? 죄를 용서해 주시려 부르십니다. 그래서 죄를 자각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오는 비율이 높습니다. 왜? 죄인들을 부르시는 분이시니까. 우리는 스스로는 죄에서 나올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부르심에 힘입어 죄의 구렁에서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려고 부르십니다.
우리는 구원자로 선택은 되었지만 세상에 들어오면서 사단에게 소속되었습니다. 세상이 사단의 수하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단의 영향력 하에 죄를 짓고 사단에게 괴로움을 당하고 심부름꾼이나 하다가 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너는 내 자녀이다, 내 사랑을 받으면서 살아야 한다!” 그래서 부르십니다.
-천국백성이 되라고 부르십니다.
세상은 사라지고 썩어질 곳입니다. 부귀영화는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영원해도 내가 영원하지 못합니다. 내가 사는 세상은 잠시 잠간입니다. 세상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입니다. 세상에서 영생의 문제를 해결하고 다음 세상에서 천국 백성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삶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부르십니다.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 고통 중에 있는 백성들을 부르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 11:28).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살라고!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은 문제가 해결 받고 주님의 힘을 얻습니다.
-일을 위해 부르십니다.
이걸 소명(召命)이라 합니다. 소명은 어떤 직분과 삶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끼며 사는 것입니다. 삶의 부르심입니다. 모두가 구원의 부르심에 응답했다고 삶의 부르심에도 응답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 문제를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해결해 놓지만 실상 삶은 스스로의 스케줄에 따라 삽니다. 이건 주님의 부르심을 받는 것은 교회 나오고 예수님을 믿을 때, 그리고 세상을 하직할 때 병이 들면, 도무지 회생할 수 없다는 포기가 오면 “그만 살고 오너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것이 부르심의 전부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부르심에 응하는 삶이 아닙니다. 부르심은 날마다 받아야 하고 들어야 하고 응답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생황신앙입니다.
2. 사명으로의 부르심
두번째의 부르심은 사명으로의 부르심입니다. 이런 부르심을 소명이라고 합니다. 소명(calling, 召命)은 어떤 특별한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구원으로의 부름을 받은 우리들은 모든 것이 바로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다는 소명의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부름을 받은 자들이 특별한 사명으로 부르심을 받습니다.
1787년. 27세 나이로 영국국회 의원이 된 윌리엄 윌버포스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내 일생을 바쳐 완수할 두 가지 사명을 주셨다.
하나는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일이고 하는 영국 사회의 도덕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윌버포스는 이 일을 위해 국회로 하나님의 파송,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으로 믿었습니다. 당시 영국은 150년 동안 약 2백만 명의 노예를 사다 팔았습니다. 그는 150번이나 되는 대국회논쟁을 통해 노예제도 폐지를 외쳤습니다. 46년 만에 노예제도를 영원히 폐지하는 법안이 통과되었고 3일 후에 죽었습니다. 그는 “노예제도를 포기하는 것을 보게 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는 말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일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의 멋진 생애입니다.
한국 장로교의 첫 선교사 언더우드는 경신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를 설립하여 수많은 인재양성과 교회를 세운 한국장로교 1대 총회장입니다. 영국 출생인 언더우드는 13세에 미국으로 이주해서 목사가 됩니다. 원래는 인도선교사로 가기 위해 1년간 힌디어와 의학을 공부하던 중에 조선이라는 동아시아의 생소한 국가에 파견할 선교사 한 명을 찾지 못한다는 소문을 듣고 조선에서의 선교 활동을 결심합니다. 약혼녀와 조선에 가는 문제를 두고 대화를 나눴다 합니다.
“그 곳에서는 무얼 먹고 살고 있나요?”
“모르겠소.”
“병원은 있나요?”
“모르겠소.”
“그럼 당신은 조선에 대해 아는 게 뭔가요?”
“없소! 내가 아는 것은 오로지 주님을 모르는 1,000만의 민중이 살고 있다는 것뿐이오.”
약혼녀는 동의하지 못했고, 파혼 통보를 받은 언더우드는 홀로 조선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래서 같은 날 제물포에 동시에 상륙한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는 부인이 있었고 언더우드는 총각 신분이었습니다. 이후 4대에 걸쳐 한국을 위해 살았습니다. 언더우드는 미국에서 얼마든지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4대에 걸쳐 일가족은 대한민국을 세계적인 국가로 발전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부르심을 받지 못한 약혼녀는 이름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언더우드는 구원의 부르심에만 응답 받은 것이 아니라 사명으로의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 자신의 것들을 내려놓는 희생을 자처했습니다. 결과는 최고의 행복이었고 보람이었습니다.
구원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사명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목사와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습니다. 이런 부르심에 망설이거나 불순종하면 요나처럼 불행한 사람을 삽니다. 신학교에도 사명으로의 부르심을 거부했던 사람들이 많이 매를 맞고 입학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목사와 선교사만 아니라 우리 모두도 사명으로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내가 있는 자리가 사명의 자리입니다. 정치가나 의사나 교사나 사업가이거나... 모든 직업에서 소명의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눈빛이 빛납니다. 그래야 행복한 생애로 살 수 있습니다.
3. 하늘에서의 부르심
지난 주간에 사랑하는 황권사님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94세의 권사님의 생애는 하나님과 맺었던 생명의 임대계약이 끝났기에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입니다. 모든 이들은 하나님과 생명을 임대한 관계입니다. 우리에게도 생명임대가 끝나는 날이 옵니다.
"이제 그만 살고 오너라~ 이곳은 너무 좋으니 어서 오너라~ 내가 상급을 많이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단다~"
부르심의 응답에 보상해주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상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이렇게 좋은 부르심의 하나님이십니다!
결론
구원의 부르심은 일생에 단 한 번입니다. 사역에 대한 부르심, 소명은 일생에 수없이 계속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어야 합니다. 예배 때마다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삶에서 주님의 내밀한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영이 예민해 있고 작은 부르심에 반응을 통해서 큰 부르심에 응답될 수 있는 준비를 갖추는 것입니다. 그래야 쫓아다니는 삶, 쫓겨 다니는 삶이 아니라 부름 받은 행복한 삶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생에 세 번째의 부르심, “하늘로 오라”는 부르심을 듣게 됩니다. 그 때 하늘에서 우리들을 위한 큰 상급이 예비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흥분(興奮)입니다! 이번 여름에 구원을 든든히 붙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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