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자세
히브리서 11장 8~12절
서론
믿음바로세우기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1주 왜 믿는가-믿음의 동기,
2주 누구를 믿는가-믿음의 대상,
3주 무얼 믿는가-믿음의 내용,
4주 ‘무엇으로 믿을까?’-믿음의 원동력
오늘은 다섯 번째로 어떤 자세로 믿을까-믿음의 기본기에 관한 것입니다!
믿음의 자세는 믿음의 기본기가 바로 세워져야 합니다. 오래 믿어도 제대로 된 믿음의 폼이 나오지 않는 분들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뭐냐, 별로 생각해보지 않고 그냥저냥 나오다보니 몸에 배었습니다. 그래서 이발관에 가듯이 미용실에 가듯이⋯ 혈압 약을 타러 병원에 가듯이 그렇게 교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뭐냐, 하면 그냥 교회 다니는 것! 이 정도밖에 대답을 내지 못합니다. 믿음의 기본기가 제대로 탄탄하게 세워지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30년 수염 기른 할아버지. 수염이 배꼽까지 내려왔습니다. 어린손자가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잠잘 때 수염을 이불 속에 내놓고 자요? 밖으로 내놓고 자요?”
손자의 질문을 받고 보니 30년 동안 수염을 기르면서도 여태껏 생각해보지 못한 사실입니다.
“글쎄~ 할아버지도 잘 모르겠네, 오늘 밤 자보고 가르쳐 줄게!”
그 밤에, 수염을 이불 속에 넣으니 답답하고 밖으로 내 놓으니 허전하고⋯ 밤새도록 이불 안으로 넣었다 밖으로 꺼냈다⋯ 다음 날 손자에게 해 준 답은⋯ “나도 모르겠다!”
믿음도 그래요! 오래 믿는다고, 직분이 있다고 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의 자세, 기본기가 좋아야 합니다. 기본기는 악기나 스포츠에서 기초가 되는 기술입니다. 축구에도 기본기가 필요하고 탁구 배드민턴에도 기본기가 필요합니다. 우리교회 배드민턴동호회도 보면 기본기를 잘 다진 분들은 실력이 늘고 기본기가 없이 시간 날 때 드믄드믄 참여하는 분들은 실력이 늘지 않습니다. 기초가 탄탄한 사람과 대충 배운 사람은 갈수록 격차가 심해집니다.
오늘 아무개 성도님이 우리교회에 등록한지 3주년이 되는 주일이라며 감사헌금을 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보다 열배인 30년을 믿고 살았고 그 이상을 믿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면 3주년이 되는 분들보다는 더 큰 믿음과 용서와 사랑과 담대함과 관대함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 믿음은 이제 성장-성숙-성화를 말해야 합니다.
성화되는 믿음이 되려면 기본기가 바로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목적도 좋고 대상도 좋고 내용도 잘 알고 믿음의 원동력도 좋지만 믿음의 자세, 기본기가 제대로 세워지지 않으면 십자가에 기초를 둔 기독교가 아니라 내 식의 기독교를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내 식대로 믿겠다는 사람이 가장 위험합니다. 그것이 사사시대를 요약할 수 있는 ‘자기소견대로 사는’ 신앙입니다. 혼탁한 신앙이요 변질된 신앙입니다.
교회는 내 식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방식, 하나님의 원리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원리대로 믿음의 터를 세우는 것이 바로 믿음의 기본기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의 기본기 세 가지를 살펴봅니다.
믿음의 자세1, 순종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장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1, 3, 4절⋯.
11장의 등장인물들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던 믿음의 승리담입니다. 그들은 어떤 자세였나요? 특히 아브라함이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 무엇을 기초로 했나요?
8절,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순종(順從)은, 순순히 따르는 행위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존재와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사실 순종하기에 어렵지요! 다신론 세상에서 유일신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이나 뉴욕의 월스트리트, 영국의 런던, 홍콩의 금융가에서 연봉 수억 원 씩 받던 사람이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거라~ 라는 명령만큼이나 순종하기 쉽지 않는 부르심입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순종하여, 8절, 갈 바조차 몰랐지만 길을 나섰습니다. 100% 절대적인 순종입니다.
믿음의 영웅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존재와 상황에 대해서 100% 절대적인 순종을 했습니다.
3절,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1:1, 믿음의 자세는 성경의 첫 문장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천지창조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면, 성경은 모두 사실입니다.
베드로와 바울사도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 선언합니다. 성경 1189장 모두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아멘! 순종하는 것이 믿음의 기본자세입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지질학박사학위를 받은 커트 와이즈는 진화론과는 상반되는 천지창조설을 믿는 젊은 지식입입니다. 진화론을 배우면서 창조론과 갈등을 느끼자 성경을 살펴보고 진화론과 배치되는 내용을 잘라내기로 했습니다. 작업을 마쳤을 때 두려워했던 진실과 마주치게 됩니다. 성경에 남아있는 페이지가 몇 장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성경을 택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진화론을 포함해 그에 반하는 모든 것을 거부한 것은 그 날 밤이다. 지구상의 모든 증거가 창조론이 틀렸음을 증명한다면 내가 먼저 진화론을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지금은 여전히 창조론을 믿는다. 여기가 바로 내가 서 있어야 하는 곳이다”
그래요! 진화론이나 창조론-둘 다 결국은 종교적인 선택입니다. 성경적 종교로 이해할 것인가, 진화론적 과학종교로 받아들일 것인가? 개인의 선택입니다. 과학적인 만물 창조는 끝없는 탐색입니다. 오늘은 이 과학자에 의해 이렇게 설명되고, 내일은 저 과학자에 의해 다른 연구설이 제기될 것입니다. 그동안의 과학이론들이나 진화론의 설명들이 언제 뒤집어질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창조종교와 과학종교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우리는 만물의 출발, 인류의 출발이 하나님이라는 성경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성경에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게 훨씬 더 목적이 뚜렷한 존재로 살 수 있습니다.
믿음의 영웅들은 상황에 대해 순종합니다. 모든 상황에 아멘! 순종하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성경을 잘 알고 믿는 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상황에 대한 절대적 순종이 좋은 믿음입니다.
7절 믿음으로 에녹은 120년동안 방주를 지었습니다.
8절,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도 못하면서 당시최고의 문화도시를 떠납니다.
11절, 믿음으로 사라는 90세가 가까워 가임기가 지났으면서도 임신을 믿었습니다.
부질없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약속을 주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상황보다 야훼 하나님을! 내 몸의 상태보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그러니 좋은 믿음입니다.
얼마나 성경에 순종하는가? 어려운 상황에서 얼마나 하나님을 의뢰하는가, 인권이냐 신권이냐의 기로에서 하나님의 말씀 편에 서고 신권을 우선적으로 택하는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내 앞에 주어지는 상황에서 타락하지 않고 비굴하지 않고 처신하는 것이 좋은 믿음입니다.
믿음의 자질2, 용기
믿음의 전당에 오른 아브라함, 모세, 다윗⋯ 등은 용기 있는 사람의 모델입니다. 바울은 로마의 토굴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용기의 출처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은 종이호랑이로 느끼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용기의 근원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용기가 된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키신다… 이런 여호와 신앙은 용기의 근원이 됩니다.
리빙스턴 사후에 그의 성경은 마태복음 28:20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입니다.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사역할 수 있는 용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용기는 난관을 극복하고 원수를 싸워 이기고… 이런 승리만이 아닙니다. 진정한 용기는 하나님을 위해, 믿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복을 포기할 수 있는 용기, 용서의 용기, 자기를 내려놓을 용기-이것이 세상과 다른 용기의 개념입니다.
작년에 가장 많이 팔렸던 책 중의 하나가 일본 사람이 쓴 <미움 받을 용기>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관한 일본의 1인자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와 베스트셀러 작가 고가 후미타케의 공저로, 아들러의 심리학을 ‘대화체’로 쉽고 맛깔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아들러는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다. 그렇기에 인간의 고민은 전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다, 따라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인간관계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길 원하는 사람은 타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에 아들러는 타인에게 ‘미움받을 용기’를 가져야만 비로소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진다고 강조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의 영웅들도 미움을 받을 용기를 지닌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용기는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한 용기가 아닙니다. 다신교 사회에서 일신교, 유일신 여호와신앙을 믿고 전파하고 순종하기 위해서는 핍박을 받아야 하고 표적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위해 그들은 미움을 받을 용기를 넘어서 죽을 용기를 가졌습니다.
35절, 여자들은⋯ 심한 고문을 받되⋯
36절, 어떤 이들은 조롱과⋯
37절, 돌로 치는 것과⋯
눈물 나지 않습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이들의 용기에 대해 38절,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용기라고 했습니다. 살려고 싸우는 사람과 죽을 각오를 하고 싸우는 사람과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향토방위군과 용병의 차이는 죽을 정신으로, 돈을 벌 정신으로⋯ 그래서 다릅니다.
지금 우리에게 이런 용기가 없습니다. 너나 나나 믿음의 배짱들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제1의 종교, 주류종교가 되었지만 머리카락 잘린 삼손처럼 조롱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기본기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소꿉장난에 불과할 뿐입니다.
믿음의 자질3. 상급
믿음의 전당에 등재된 영웅들을 보세요!
6절, 믿음이 없이는⋯ 그가 자기를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의 영웅들이 좋은 환경을 버리고 고향을 떠납니다. 믿음을 위해 다신교를 버리고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을 선택합니다. 그 자체는 견제와 핍박과 따돌림을 전제합니다.
어떻게 보면 바보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생명! 한번 밖에 오지 않는 생애! 모든 것들을 포기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그래서 그들은 세상에서 많은 것을 빼앗겼고 목숨까지도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죽어갔습니다.
그들이 바보였나요? 그들은 더 큰 것을 얻는 확신이 있기에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버렸고 70년 80년의 생애보다 더 영원한 영생이 있음을 알았기에 세상을 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16절, 그들이 이제는 더 나온 본향을⋯
35절,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더 좋은⋯
히브리서 전체를 통해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더 나은’ ‘더 좋은’ 용어들입니다.
16절 35절, 40절⋯ 그들은 남들보다 멀리보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았기에 결코 바보가 아니라 진정 종교인들 중의 종교인이요, 철학자 중의 철학자들이요 과학자들 중의 과학자들이요 탐험가 중의 탐험가요 개척가 중에 개척가였습니다. 그래서 스타-영웅들입니다.
물론 우리에게도 상급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세속적인 보상입니다. 땅에 올인하는 보상입니다. 이건 기본기가 잘못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욕심이 많고 재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들이 성장은 하는 것 같은데 성숙이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라면 공평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보상과 심판이 있어야 세상 역사도 공평하고 믿음의 길에서도 공평합니다. 순교자들과 십자가에서 구원을 받은 강도가 어찌 공평해서 되겠습니까? 평생 주일성수를 한 사람과 대충 믿은 사람과 천국에서 공평한다면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 아닙니다. 십일조를 해온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들이 공평하다면? 이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구원은 은혜로 받지만 상급은 다릅니다. 천국은 상급이 있고 영화가 있습니다. 상급은 세상에서 한 일에 대한 보상이여 영화는 성화에 대한 보상입니다. 두 가지를 잘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세상에서 보상이 다 되지 않아도 천국의 보상이라는 기본기가 있으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천국보상이라는 믿음의 개인기가 없다면 일도 하지 않고 성화도 없습니다. 분명 보상이 있다! 이 확신가운데 더 열심을 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결론
동물원에 있는 동물의 가치를 무엇으로 평가할까요? 얼마나 동물원 먹이를 먹었나, 얼마나 동물원에 오래 있었나, 경력으로 평가되지 않지요. 동물원에 얼마나 오래, 무얼 먹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탐스럽게 건강하고 구경꾼에게 얼마나 많은 즐거움을 주는가, 그걸로 평합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얼마나 잘 알고 교리를 잘 알고, 얼마나 오래 믿었는가, 그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순례 길에 성경에 대한 100% 복음적인 신앙이 없다면! 나를 내려놓는 자기포기의 용기가 없다면, 하나님보다 사람이나 바라보며 처신한다면 사람에게는 인정받을지 몰라도 하늘의 믿음의 전당에는 내 이름이 등재되지 못합니다.
우리들도 믿음의 기본기-순종, 용기-보상에 대한 기본기를 제대로 세워 천국의 믿음장에 등재되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